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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제지관련 정보

어느 식물서 찾아낸 ‘종이’의 재료 [맥락+]
이름
관리자
날짜
2024.01.25 11:01
조회수
138

 

문자를 기록하는 ‘틀’ 점토판이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지역에 해당한다. 수메르 사람들은 점토판에 문자를 새기는 작업을 2000년 동안 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까지 발굴된 대부분의 점토판은 개개인의 상거래를 기록한 서류와 국가의 문서들이다. BC 6세기께 아랍어와 알파벳이 등장하면서 고대사람들은 이런 점토판 대신 사용하기에 훨씬 더 간편한 ‘파피루스(papyrus)’를 활용했다. 파피루스는 영어 단어 페이퍼(paper)의 어원이다. 파피루스는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피로스(papyros)인데 라틴어에서 비롯됐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종이와 비슷한 재료다.

파피루스로 문서 재료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줄기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줄기 속 부드러운 부분을 얇게 잘라 4~6장을 만든다. 이를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겹친 후 강하게 두들긴다. 그다음 물에 담가두면 자연스럽게 고무즙이 스며들어 밀착한다. 파피루스에 삼베 같은 느낌의 무늬가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이것을 물속에서 꺼내 무거운 것으로 누른 채 햇빛에 건조하면 얇은 종이 형태가 된다. 이 방법으로 보통 20여장의 사각형 파피루스를 하나로 이어 두루마리로 만들어 사용했다.

고대인들은 여기에 목탄이나 나뭇가지를 섞어 만든 액체와 갈대 줄기를 비스듬하게 깎아 만든 필기도구로 문자나 그림을 새겼다. 파피루스는 점토판에 비해 내구성이 약했지만 BC 2500년 전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 때문이다.

또다른 요인은 이집트의 장례식 풍습에 있다. 내세來世를 강하게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사자를 지하세계로 안전하게 인도하기 위해 관뚜껑과 무덤의 벽에 주문을 새겨넣었다. 공간이 부족할 때는 주문을 적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함께 매장했다. 고대 이집트인은 초대 왕조 이전에 파피루스의 사용법을 개발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식물 파피루스를 재료로 책 이전 형태인 코덱스(codexㆍ책 같은 형태의 고문서)를 만들었기 때문에 파피루스라고 부른다.  현재 발견되는 파피루스 문서엔 명령, 보고, 회계, 의학, 기도문, 세속 문학, 설계도 등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다양한 그림이 텍스트와 함께 작성된 ‘사자死者의 서書’와 같은 종교문서도 있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 시대 관 속의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 안내서’로 파피루스에 그 교훈이나 주문呪文을 상형문자로 기록했다. 당시 이집트 왕들은 내세에도 최고의 신이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피라미드의 현실玄室과 벽에 주문ㆍ부적을 새겼는데, 이를 피라미드의 텍스트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를 지나 중왕국 시대에는 귀족이나 부자의 관 속에서 죽은 후의 행복을 작성한 기록물이 나왔다. 관구문棺構文 또는 코핀텍스트(Coffin Texts)는 고대 이집트 제1중간기 시대에 주술들이 쓰인 장례문헌들의 모음이다.

후에는 주문에 의지해 내세의 행복한 생활을 얻으려 했으나, 현세에서 선행을 쌓지 않으면 내세에 갈 수 없다는 사상이 나타나 죽은 이에게 이 사실을 가르칠 문구를 파피루스에 작성해 관에 넣었다.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 

이 사고방식은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하고 비옥한 축적지가 생기는 규칙성에서 비롯됐다는 설명도 있다. 죽은 후에도 또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주문이 담긴 ‘사자의 서’를 무덤에 넣었던 거다.

따라서 지금도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과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책의 기원 중 하나인 파피루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공병훈 협성대 교수 | 더스쿠프
hobbits84@naver.com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출처 : 더스쿠프(https://www.thescoop.co.kr)